강금원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측근이다. 한국 염색연합회 이사, 창신섬유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2009년 강금원의 횡령 사실을 수사한 대전지방검찰청 특수부(이경훈 부장검사)는 강금원이 노무현 정부의 유력 인사, 공기업, 언론사 등에 돈을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강금원은 2004년 5월 한국수자원공사 전 감사 김모씨에게 1000만원을 전달했다. 2006년 6월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이모씨에게 1억 1000만원, 여주군청 최모씨에겐 1000만원을 건넸다. 금융계 인사인 이모씨 등 2명에게도 1600만원을 전달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노사모 회장이었던 이기명, 노무현 정부의 평가포럼 집행위원인 명계남(배우) 등에게는 시그너스골프장의 고문·직원 등으로 등재시켜 놓고 급여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으며, 이들에게는 회사 승용차까지 지원했다.[10] 명계남에게는 2006년 10~12월 3차례에 걸쳐 5400만원을 전달했으며, 안희정에게는 2005~2007년 3차례에 걸쳐 4억 100만원을 전달했다. 2008년 8월에는 김우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의 임차료 3억 5000만원을 대신 내줬으며, 2007년 3월 윤태영 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이 사직하자 2007년 7월 충북 충주의 한 금융기관에서 수표로 1억원을 빼내 건넸다. 2007년 9월 임찬규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에게 8000만원을 줬고, 2007년 4∼12월 5차례에 걸쳐 참여정부평가포럼에 1000만∼2000만원씩 모두 6000만원을 송금했으며, 2005년 2월과 2007년 7월 2차례에 걸쳐 여택수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에게 7억원을 건네는 등 20여명과 단체에 총 30여억원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강금원 은 1952년 11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전주공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섬유사업을 했는데, 지역차별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1975년 설립한 창신섬유가 크게 성장하여, 부산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1998년 정치인 노무현이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할 당시 전화로 처음 만났으며, 노무현이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했던 것에 감명받아 2000년부터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4] 노무현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소신껏 정치를 하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노무현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한치의 사업도 확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자기 측근들을 요직에 거의 챙겨주지 못했는데, 강금원이 그를 대신해서 가난한 친노인사들에게 생활비를 대주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12월, 검찰수사를 받고 배임 및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사면복권되었다. 하지만 2006년에도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노무현 퇴임 후에는 검찰이 그와 노무현 주변에 대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실시하였다. 이 당시 검찰에게 최우선의 수사대상이었던 게 노무현과 강금원 사이의 비리였다. 그러나 둘 사이의 비리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의 올가미가 노무현과 강금원을 본격적으로 옥죄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봉하마을에는 친노인사들이 거의 발길을 끊다시피 하였고, 오직 강금원과 안희정 등 몇몇만이 노무현 곁을 지켰다.
2009년 4월에 검찰은 1999년∼2002년 주주임원에 대한 단기 대여금 형식으로 회사돈 50억원을 빼내서 회계장부상 비용과다 계상 등으로 허위변제 처리하고 같은 기간 법인세 13억5000만원을 포탈한 혐의. 특경가법상 배임 및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당시 노무현이 미안한 마음에 면회를 신청하려고 했으나, 마음은 알겠다면서 만류했다. 강금원이 수감되기 전까지 창신섬유는 직원이 400명에 이르는 등 부산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검찰의 계속된 수사와 거래업체 압박으로 직원이 60명까지 줄어들었다. 지금도 회사 자체는 동생이 이어받아서 남아있지만 20명 내외의 직원만 남아있는 수준이며, 예전에 비하면 회사 규모가 많이 영세해졌다.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담요를 만드는 공장만 남겼다고 한다.
구속기간 내내 지병인 뇌종양이 악화되어 진단서까지 떼어 보석을 신청했으나 거부되었다. 며칠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보석이 허가되어 노무현의 빈소 방문 후 수술을 받고 요양 생활을 했으나 2012년 8월 2일에 별세했다.
2018년 5월 1일, 봉하마을에 강금원 회장의 이름을 딴 강금원기념 봉하연수원이 개원된다.
강금원
1952년 11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
2012년 8월 2일 사망
학력
한양대학교 섬유공학과 졸업
전주공업고등학교 졸업
경력
1975년: 영신염공 설립
1980년: 강원섬유 설립
1990년 9월 6일: (주)창신섬유 설립, 대표이사 회장
1999년: (주)캬라반 설립
2001년: (주)시그너스컨트리클럽 대표이사
2007년 9월: (주)봉화 설립
2010.02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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