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국회의원 학력 나이 고향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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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언주 국회의원 학력 나이 고향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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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는 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경기도 광명시 을 지역이다. 소속 정당은 일단 바른미래당이다.

바른미래당 내에서 가장 우파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자유한국당에 참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아예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보다 더 강경 보수이며 자유한국당과 밀착한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었고 국민의당 분당 때도 잔류했었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고 말한다. 기존의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제외한 타 정당의 지지자들에서는 정치적 '철새', '분란 유발자' 등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친 자유한국당 성향의 지지자들은 그를 적극 옹호, 지지하고 있다.

이언주는 1972년 부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글로벌 문화를 경험하였다. 남도여자중학교, 영도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2012년 2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던 당시 한명숙 대표 체제의 민주통합당은 지지기반 확대 차원에서 중도 우파 성향의 전문직 여성, 커리어 우먼인 이언주를 전격 영입했다.젊은 여성 신인 정치인을 영입하여 험지에 공천하려는 계획은 2009년 일본 총선에서 일본 민주당이 사용한 미녀 자객 공천과 비슷한 전략이었다. 이 때 같은 역할로 이언주와 함께 영입된 임지아 변호사도 서울 서초 을에 공천되었으나 낙선했다. ​



이언주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경기도 광명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같은 당의 양기대 광명시장이 구축하기 시작했던 지역 조직을 바탕으로, 지역 내의 아파트 단지 신축 등으로 새로운 입주 인구가 많아지면서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유권자 층이 대폭 늘어나던 지역구 상황을 활용하는 한편, 당시 경기 남부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헤비급 정치인 손학규의 전폭적인 후방 지원까지 집중적으로 받아, 현직 국회의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전재희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사실 이 광명시 을 지역구는 손학규가 14대에서 16대까지 내리 3선을 했을 정도로 손학규의 지배력이 탄탄했던 지역구였다. 당연히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던 손학규의 지원은 이언주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당선 후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과 정책위 부의장을 비롯한 중요 핵심 당직을 맡는 등, 당 차원에서도 젊은 차세대 여성 정치인 타이틀로 이언주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조직본부장이 되었다.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 선거 비문계 대표후보로 출마했지만 친문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해철에게 패배하였다. 이 때 "내가 경기도당위원장이 되어야 문재인 전 대표 대통령 당선에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후 이언주의 민주당 탈당과 본격적인 우파 행보 때문에 이 발언은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언주는 훗날 회고하기를 이 때 당내 비주류로서의 '벽'을 느꼈고, 이 당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2016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체제에서 김종인계로 꼽혔다. 아마도 비주류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영입했지만 문재인과는 불편한 관계를 이후 형성했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노선이 자신과 부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종인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노태우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및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으며,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하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점점 문재인과의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점차 그와 멀어지고, 결국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 및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감행하자, 이언주는 김종인을 옹호하고 친문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탈당을 암시했다.

IMF 즈음 부친의 사업 부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하며 알바를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경험으로 멘탈 갑이 된 듯... 아주 최근에 나온 기사 참조. 그리고 IMF 사태가 터진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국제거래, 투자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영입, 한국의 르노삼성자동차의 법무팀장으로 영입되면서 본격적으로 기업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200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의 한국 합작회사인 에스오일의 법무총괄 상무를 맡게 되는데 주요 대기업 중 최연소 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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