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통일부 장관 프로필 학력 나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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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세현 통일부 장관 프로필 학력 나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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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은 1945년 만주국 싼장 성 자무쓰에서 태어난 '해방둥이'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만주 변방의 자무쓰로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정세현이 태어나고 두 달 뒤 팔일오 광복이 되었다. 생후 100일 만인 9월 말에 강보에 싸여 그곳을 떠나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 전주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1973년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한비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 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 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원으로 특채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시절 '베이징 쌀회담'에서 뛰어난 수완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통일부 차관으로서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에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30여 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대한민국 측 수석대표로서 매끄럽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4][5]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정세현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남북 접촉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는데, 남북대화만 95차례나 이어졌고 1971년 이래 남북 간에 체결된 143개 합의 가운데 73개가 정세현의 장관 재임기간에 이뤄졌다. 남북 관계에서 획기적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개성공단은 오롯이 정세현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을 당시 정세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고 끝내 정세현이 개성공단의 첫 삽을 떴다. 정세현의 주도 하에 2002년 9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 재착공식이 치러졌고 마침내 2009년 10월 경의선과 동해선이 개통되었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2000년 제1차, 2007년 제2차)이 이뤄지면서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해 TV 및 라디오 인터뷰에 자주 등장한다. 북한관련 뉴스가 있으면 꼭 김어준에 뉴스공장에 나와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준다. 추가로 2019년 여름부터 유튜브에서 정세현TV 운영으로 더 자주 많은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정세현
1945년 6월 16일 (74세) 출생

학력
경기고등학교
1967년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과정 입학
1971년 : 학사학위 취득
1971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입학, 대학 조교
1973년 : 국제정치 석사학위 취득
1975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박사과정 입학
1982년 : 국제정치 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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